KBO는 40시즌 동안 뛰어난 경기력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던 40명의 레전드 선수를 뽑았다. 10개 부문에서 각 4명씩 선정했는데, 부문별로 보면 최다 득표자(선동렬,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원년의 스타(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불굴의 의지(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82세계선수권 주역(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최강 선발(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성실함의 대명사(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근성의 야수(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최강 좌타자(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우타 거포 계보(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우즈), 전천후 투수(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로 뽑혔다. 이 중 해태-KIA타이거즈는 가장 많은 8명의 레전드를 배출했다.(KBO레전드 페이지 상 유니폼 이미지 기준 - 삼성라이온즈 7명, MBC청룡-LG트윈스 6명, OB-두산베어스 5명, 한화이글스 5명, 현대유니콘스 4명, 롯데자이언츠 2명, SK와이번스 2명, 쌍방울레이더스 1명)
최다 득표자 : 선동렬, 이종범
해태-KIA타이거즈의 유이한 영구결번이다. 더구나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의 두 주인공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광주일고 출신에 해외에서 뛰었던 팀이 일본의 주니치드래곤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설같은 스탯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해 신인왕을 받진 못했다. KBO레전드 40인 중 최다득표 1위를 한 선동렬의 별명은 멍게, 무등산폭격기, 국보투수, 나고야의 태양 등이다. 선동렬의 어마어마한 기록은 KBO에서 11 시즌 동안 146승을 하는 동안 단 40패만 당했다는 것인데, 승률이 역대 1위로 무려 0.785나 된다.(10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 중. 2위는 0.667) 그동안 132세이브를 올린 건 덤이다. 또한 탈삼진은 1698개로 역대 3위를 기록하면서 4사구는 404개만 내줬다. 그리고 홈런은 28만 맞았을 뿐이다. 요즘은 드문 기록인 68완투(4위), 29완봉으로 역대 1위다. 그래서 한국 야구사에서 최고 중에 최고 투수로 꼽힌다. 레전드 40인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한 이종범은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로 불린다. 아들 이정후는 아버지의 별명을 따라 자연스레 바람의 손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종범에게 가장 객관적이고, 어울리는 말은 게임체인저일 것이다. 이종범은 쳐줘야 할 때 해내야 진짜 스타라는 말을 스스로 입증한 선수다. 그의 KBO 통산기록은 타율 0.297(6060타수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다. 더불어 시즌 최다 도루(84개), 24경기 연속 도루(이상 1994년), 한 경기 최다 도루(6개·1993년), 30홈런-60도루, 시즌 최다 고의4구 30개(이상 1997년) 등의 신기원을 열었다. 백인천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했던 1994년 196안타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정확하게 치고, 빨리 달리고, 멀리 날리고, 잘 받고, 제대로 던지는 5툴 플레이어의 전형이다. 하지만 타이거즈 레전드 중 조계현, 임창용과 더불어 아직까지 프로야구 1군 감독을 하지 못했다.
원년의 스타 : 김성한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타이거즈에서 뛰 김성한은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 선조격이다. 1982년부터 터져 나온 기록 중에서도 40년 동안 접근도 불허한 투타겸업 10승-타점왕을 기록했다. 공포의 오리궁뎅이 타법으로 타자 부문에서 홈런왕 3회(1985·1988·1989년), 타점왕 2회(1982·1988년)에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을 6번이나 수상했던 강타자였다. 하지만 15명의 선수로 시작한 해태타이거즈에 부족한 투수를 메꾸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타자로 통산 타율 0.286, 홈런 207개, 타점 782개, 도루 143개, 2천285루타를 남겼다. 투수로는 완봉승 2회, 완투 5회를 포함해 통산 41경기에서 15승 1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했다. 우리 프로야구 역사에서 최초의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호타준족이기도 했다. 1982년에 프로야구에 데뷔해서 1995년에 은퇴한 김성한은 선수시절 보여줬던 강력한 리더십으로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감독이자 KIA타이거즈의 첫 번째 감독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광주 지역방송에서 타이거즈 경기를 해설하는 타이거즈맨이다.(타이거즈 레전드 중 선수시절 원클럽맨은(해외 경력 제외) 선동렬, 이종범, 김성한뿐이다.)
82세계선수권 주역 : 한대화
한대화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역전 쓰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며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 홈런으로 한대화는 '쓰리런의 사나이', '해결사'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고향팀 한화에서 감독을 할 때는 '야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타이거즈 레전드 중 타 팀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유일한 선수다. 프로야구 1호 임의탈퇴 선수이기도 한 한대화는 OB베어스-해태타이거즈-LG트윈스-쌍방울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당시 8개 팀 중 4개 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중 타이거즈에서의 경력이 가장 화려했는데 8년 동안 6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통산 8번의 골든 글러브 수상, 9번의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며, 특히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한대화의 통산 성적은 화려하지 않지만,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여 해결사 이미지가 강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만화영화 '마동탁'이 연상되는 안경 투수 최동원이 있다면 안경 타자로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최강 선발 : 이강철, 조계현
해태타이거즈가 숱한 우승을 차지할 때 원동력은 펀치력보다 투수들에게 있었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쟁쟁한 투수들이 한 팀에서 운동을 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선동렬 못지않게 뛰어난 투수가 많았다. 방수원, 문희수, 신동수, 김정수 그리고 이강철과 조계현이 있었다. 이강철은 '2인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 언더핸드 '핵잠수함' 투수였다. 하지만 통산 성적은 역대급 반열에 올라있다. 152승으로 4위, 2204.2이닝을 던져 3위, 1749개 삼진으로 3위를 기록했다. 특히 데뷔시즌인 89년부터 98년까지 이어진 10년 연속 10승 이상, 100탈삼진 플러스의 기록은 10년-10승-100K라는 이름으로 깨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시작된 대기록이다. 해태에 같은 해 입단한 조계현은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김종모의 뒤를 잇는 군산상고 출신이다. 싸움닭에서 팔색조로 불리던 그는 임팩트가 있던 투수였다. 특히 다양한 구종을 던져서 얻은 '팔색조'가 정말 잘 어우리는 선수였다. 이강철처럼 통산 성적은 화려하지 않지만, 1993~1994년 2년 연속 다승왕, 1995년 평균자책점 1위, 1993년부터 4년간 완투 39번, 완봉승 12회를 이뤘으며 연평균 181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재밌는 기록으로 LG상대로 2년간 12연승으로 특정팀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태에서 삼성으로 그리고 두산으로 트레이드되어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조계현은 2017년에 KIA타이거즈에서 수석코치로 우승을 하였고, 이후 단장까지 했다. 타이거즈 최초 외국인 감독까지 모셔온 조계현 단장은 2021시즌을 마치고 성적에 책임을 지고 함께 사임을 했다. 이강철은 KT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만년 2인자라는 딱지를 뗐고, 지금은 야국 국가대표 감독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근성의 야수 : 이순철
이순철은 해태타이거즈 출신 중에 유일한 신인왕이다. 야구천재라는 이종범도 받지 못했다. 우승을 밥먹듯이 한다는 타어거즈에서는 유독 신인왕과 인연이 없었다. KIA타이거즈에서도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하다가 투수 '이의리'가 간신히 프랜차이즈 두 번째 신인왕이 되었다. 그만큼 타이거즈에서는 신인왕이 귀하다. 이순철은 데뷔 첫해 3루수로 출전해 득점 1위(67), 타율 0.304, 12홈런, 50타점에 31도루로 신인왕이 되었다. 다음 해 한대화가 이적해 오면서 외야수로 뛰게 된 이순철은 한국 프로야구 중견수의 계보를 잇는 선수에 이르렀다. 이순철은 도루왕 3차례(1988, 1991, 1992), 안타왕 1차례(1992)를 차지했고, 골든글러브도 5차례나 수상했다. 홈런도 곧잘 때려내는 호타준족의 이순철은 이종범이 들어오기 전까지 타이거즈 부동의 1번 타자였다. 해태에서 방출되어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은퇴를 하고, 코치가 되었다. LG에서 코치로 뛰다 2004년 감독이 되었는데, 변변찮은 성적으로 감독 3년째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순철은 누구보다 야구해설가로 어울린다. KIA타이거즈에 수석코치로 복귀를 한 적도 있으나, 모두까기 해설의 매력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전천후 투수 : 임창용
임창용은 일명 '뱀직구'를 던진 투수였다. 1995년에 데뷔해 2018년까지 한국, 일본,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KBO에 많은 풍운아가 있지만, 임창용의 선수생활, 그라운드 밖 생활이야말로 풍운아 중에 풍운아다. 레전드 40에 뽑혔지만, 상습도박 혐의로 처벌받아 레전드 선정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96-97시즌은 해태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던 시기다. 97년 40세이브포인트(14구원승, 24세이브)로 2위에 오른 임창용은 98시즌에는 42세이브포인트(8구원승, 34세이브)로 구원왕에 올랐다. 34세이브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최다 세이브다. 최연소 100세이브도 아직까진 임창용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23세 10개월 10일) KIA타이거즈의 정해영이 임창용이 걸었던 길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데, 과연 타이거즈 최다 세이브와 최연소 100세이브 기록을 깰지 관심이 모아진다. 임창용은 98시즌을 마치고,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에 현금 20억 원(공식 발표는 10억 원)을 받은 해태를 떠나 삼성으로 가게 되었다. 임창용 한 명과 트레이드 댓가니 삼성이 얼마나 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에서는 마무리, 선발 등 전천후로 뛰었다. 그러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국내팀들은 임창용의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걸 뒤로 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서 임창용은 부활했고, 야쿠르트에서 뛴 5시즌 동안 238경기에서 11승 13패 128세이브 21홀드 평균자책점 2.09를 기록했다. 160㎞ 패스트볼을 뿌리며 다른 선수가 되었다. 두 번째 수술은 일본에서의 경력을 마무리하게 했고, 그는 다시 MLB의 문을 두드렸다. MLB에서 첫 구는 무조건 직구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직구를 던졌다. MLB에서는 몇 경기 던지지 못했고, 삼성으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그는 마무리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원정도박 사건이 터지며 고향팀 타이거즈로 다시 돌아왔지만 팀 내 불화로 2018년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 임창용은 창용불패,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건 뱀직구다. 자신의 선수생활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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